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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임신 중지약, 이제 합법의 길 위에 서다 [ 이코노믹리뷰 칼럼 : 김진오의 처방전 없는 이야기 8 ]
작성일
2025-09-02
조회수
169
임신 중지는 한국에서 더는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 낙태죄 조항을 헌법불합치로 결정했고 이후 국회가 시한 내 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낙태죄는 2021년부터 효력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후속 입법이 마련되지 않아 지난 4년 동안 여성들은 제도적 공백 속에 방치되었습니다. 여전히 병원을 찾기는 어렵고, 불법 유통 약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먹는 임신 중지약’, 즉 ‘미프진(성분명 미페프리스톤)’의 합법화를 국정과제로 제시한 것은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미프진은 단독 또는 미소프로스톨과 함께 사용해 임신 9주 이내의 임신 중지를 가능하게 하는 약입니다. 안전성과 효과는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할 만큼 입증됐습니다. 성공률은 95% 이상이며, 심각한 부작용 발생률은 1% 미만으로 보고됩니다. 이미 수십년 간 사용한 미국과 유럽에서는 최근 대면 진료 없이 원격 처방으로도 안전하게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불법 상태입니다. 그래서 가짜 약, 불법 거래, 비정상적인 가격 등 부작용을 여성들이 감수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번 합법화 논의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책임 있게 제도를 설계하느냐 문제입니다. 법과 제도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첫째, 임신 중지를 수술뿐 아니라 약물을 통한 의학적 행위로 명확히 규정하고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합니다. 둘째, 의료진 교육과 가이드라인 정립, 의료취약지역에 대한 지원으로 안전망을 마련해야 합니다. 셋째, 임신 중지를 낙인과 죄책감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선택권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번 논의가 단순히 “약을 허용할지 말지”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검증된 약물을 제도권으로 끌어와 안전하게 관리하고, 사회 전체가 선택권을 존중하는 체계를 만드는 일, 그것이 국가의 책임입니다. 합법화는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이제는 늦은 숙제를 미루지 말고, 안전과 존엄을 보장하는 길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 김진오 원장은 진료와 연구를 병행하는 성형외과 전문의다. 뉴헤어모발성형외과의원 진료실에서 환자를 매일 만나며, 국내외 학술지에 연구 논문을 꾸준히 발표한다. 진료실 밖에서는 35만 구독자의 유튜브 채널 ‘뉴헤어 프로젝트’, 블로그 ‘대머리블로그’, 저서 ‘참을 수 없는 모발의 가벼움’ · ‘모발학-Hairology’ 등으로 대중과 소통한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처방전 없는 이야기’에서는 진료실 안팎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의학·의료 정책·사람에 관한 생각을 담백하게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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