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게임을 해봤어요!”
오징어게임 시즌2의 성기훈은 이렇게 외칩니다. 자신의 조언이 통하지 않자 이미 그 위험을 겪어본 선배라는 것을 밝힌 것이죠. 경험자의 조언은 아무래도 더 가치 있습니다.
출처 - 침착맨 유튜브
이미 <머리가 비상> 코너에 언급이 됐던 적이 있을 정도로 침착맨씨는 유명한 탈모인입니다. 1월 21일 유튜브 침착맨 채널에는 <탈모 고민이 있는 시청자에게>라는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경험자 입장에서 조언을 해준 것이죠. 그 영상의 핵심을 꼽자면 세가지입니다. 이 털의 특별함을 인정하라,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라, 부작용을 우려하여 치료를 늦추지마라
저는 이 내용을 크게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틀린 말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에요. 저도 침착맨씨의 말에 동의합니다. 다만 저 역시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경험자이기 때문에 조언을 따로 들을 필요를 못 느꼈을 뿐입니다.
그 영상을 보고 나서 설날을 맞이했습니다. 친척들도 많이 만났는데, 저희 집안이 머리 하나는 정말 타고났습니다. 아주 탈모 명문가입니다.
그냥 대머리인 사람, 약 먹는 사람, 주사 맞는 사람, 가발 쓴 사람, 모발이식 받은 사람, 두피 문신 받은 사람 모두 다 있습니다. 이러니 침착맨씨의 조언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1. 이 털의 특별함을 인정하라 – 저도 원래 탈모를 받아들이자는 주의였습니다. 다리털이 적다고 우울할 게 없는 것처럼 머리털이 적다고 우울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아직 어린 동생의 머리카락이 빠지는 모습을 보면 저 역시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요. 그 애가 다리털이 빠졌다면 안쓰러웠을까요? 아닙니다.
외면하려고 했지만, 사실은 저 역시 머리카락의 특별함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2.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라 – 침착맨씨는 탈모가 생긴 걸 알아차리라는 의미로 얘기했습니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숱에 대해 물어보래요.
“멀쩡한데요?”라고 대답하면 멀쩡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고, “이 정도면 괜찮은데요?”라고 대답하면 괜찮지 않다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머리를 사진으로 찍어보고 “나는 남이다”라고 열 번을 되뇌고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현실을 회피하지 말라고요.
저희 집안은 세대별로 조금 달랐습니다. 30대와 40대는 주변의 달콤한 말이나 자신의 외면으로 인해 탈모를 조금 늦게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10대와 20대는 더 똑똑해서 바로 인정했습니다. 탈모 얘기하는데 10대가 왜 나오냐고 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저도 얘기하고 싶어서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탈모인 걸 인정하고 나서도 객관적인 파악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친척 중에는 모발이식을 받은 후에 탈모가 더 진행돼서 가발을 쓴 사람도 있고, 두피 문신을 하고 나서 탈모가 더 진행돼서 그 문신이 티가 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한 겁니다.
3. 부작용을 우려하여 치료를 늦추지마라 – “아는 약사가 그러는데, 자식 낳을 거면 탈모약 먹지 말라고 한다.” 친척 어르신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는 약사’가 아니라 ‘모르는 약사’입니다. 모발이식이나 두피 문신 같은 경우는 너무 성급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되돌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까요.
“아직 없는 자식의 아직 없는 문제 말고, 이미 있는 자식의 이미 있는 문제부터 걱정하세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있는 문제’라는 게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 ‘없는 문제’라고 해야 했을까요?
어쨌든 친척들이 모여서 이 자식 저 자식 소리가 오가니 명절 분위기가 나기는 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득모하시길 바랍니다.
황바울
- 2015 창비어린이신인문학상 동화부문 수상
- 2018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수상
- 2020 진주가을문예소설 부문 수상
-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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